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나의 첫 이메일에 거의 일년만에 들어가보니,
중학교 단짝 친구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써 보내긴 했는데,
그 아이와의 추억을 되짚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텁텁한 감정 하나가 점차 떠올랐다.
그건 바로 그 사춘기 시절,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던,
아, 그 단어가 뭐였더라….
아, 그래, 열등감.
...
이 소설 ‘연을 쫓는 아이’도 이와 비슷하게 시작한다.
극 중 화자인 아미르는 어느 여름 날,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친구로 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 옛 지인으로 부터의 전화 한통이 그를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다시금 되돌려 놓는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제일 유명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아미르는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늘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애처로운 아이다.
아미르는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늘 죄책감에 시달리고,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미르 보다도, 오히려 하인의 아들인 하산을 더 좋아하는 것만 같다.
아미르도 물론 자신에게 무조건 헌신적인 하산을 좋아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고 게다가 성격까지 좋은 그에게 점차 열등감을 느끼며 자꾸만 괴롭히게 된다.
...
이야기 초반의 배경이 되는 아프가니스탄.
내게는 그저 가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쟁과 테러의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인 나라였다.
그곳으로 부터 많은 가슴 아픈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먼 다른 나라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책의 첫 머리에 적힌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을 위해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되었나 보다.
나 같이 무심한 사람들에게 그 곳 아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리고자 했던 것이리라.
...
그저 유년시절의 상처에 대한 성장 소설 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는,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와 러시아의 공격, 텔레반들에 의한 점령까지,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위인지
그 이유를 아미르의 눈과 귀를 통해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
신파적이고 뻔했던 요즘 내가 읽었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계속 방향을 바꾸어 충격적인 전개가 이어졌다.
단순히 소설적 재미로만 보더라도 상당히 뛰어난 책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보다도 그 안의 사람들이 더 생생히 마음에 남는다.
카불에서 미스터 허리케인이라 불리던,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
고아원을 짓고, 계급에 차별을 두지 않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당당했던 그가
‘난민’이라는 이름 아래 제일 낮은 신분으로 미국에서 맞게 되는 노년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아미르에게 언제나 자상했던 바바의 제일 친한 친구 라힘 칸 역시,
모두를 떠나 보낸 후 남겨진 사람으로써 처참하고 쓸쓸한 삶을 인내해야 했다.
떠나간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이나 똑같이 고통 받는 삶.
...
이야기 후반부에 밝혀지는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라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방관자로써 발을 빼야 할까, 아님 다칠 것이 분명함에도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일까?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가 내 친구이기 때문에 사랑했다. 동시에 나는 그가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했다.
네가 이해해줬으면 싶은게 있다. 그것은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책에서 마음에 남았던 두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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